북한, 베트남 개혁·개방 도이머이 도입 전과 유사

평양서 10년 근무한 베트남 대사 “북한식 개혁·개방 모델 찾아야”

지난해 4월 북한 평양의 혁신역 인근에서 교통안내원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연합DB
  북한의 현재 상황은 베트남이 1986년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하기 전 5년가량 경험한 시범단계와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도이머이는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 법치국가 건설, 민주주의 실현을 표방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해외투자를 유치, 경제성장의 물꼬를 튼 정책이다.
  팜 띠엔 번 베트남 종신대사는 연합뉴스와 인터뷰(5월 18일)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 이후 많은 변화가 보인다”면서 “공장과 농촌에 책임관리제와 도급제(포전담당제)를 도입해 주민이 할당량 외 잉여분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등 베트남의 도이머이 시범단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는 팜 띠엔 번 베트남 종신대사. 연합DB
  번 대사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주평양 대사를 지내는 등 북한대사관에서 10년간 근무한 북한통이다.
  그는 “북한은 중국과 베트남의 개방 이후 경제개혁에 많은 관심을 두고 공부해왔고, 특히 1989년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개혁·개방에 대한 연구를 더 적극적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신의주 특구, 나진·선봉 특구, 금강산 특구, 개성공단을 만들고 재일교포 자본으로 수백 개 공장을 유치했지만, 국내외 여건이 성숙하지 않아 성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방북했다는 번 대사는 “현재 평양 상점에서는 공장과 농촌의 잉여 생산물이 유통되고 있고 외화도 마음대로 쓰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그는 또 “돈 있는 사람들이 수입품을 사고 고급식당과 커피숍 등을 이용할 수 있으며 평양에만 택시회사가 10곳이나 있다”면서 “도이머이 시범단계와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도이머이 시범단계는 농업 분야에서 지방 관료들이 먼저 도급제를 시행하고 나중에 중앙 지도자들이 그 성과를 인정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북한은 지도자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차별성이 있다고 번 대사는 지적했다.
  그는 “베트남이 1989년 캄보디아에서 철수해 미국 등에 의한 경제봉쇄를 풀었던 것처럼 북한도 핵 문제를 해결해야 국제사회와의 경제협력과 개방 정책을 순조롭게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번 대사는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체제유지를 무엇보다 중시하기 때문에 북한의 체제가 보장된다면 개혁·개방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번 대사는 “북한은 시범단계를 거쳤고 개혁·개방해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느끼고 있어 김 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에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결단성 있게 하면 본격적인 개혁·개방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 선전 매체에서 김 위원장이 “노동당에 잘못이 있으면 과감하게 인정하고 제때 시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변화라고 번 대사는 설명했다.
  다만 베트남이 도이머이를 도입할 때 ‘개혁이냐, 죽음이냐’라는 슬로건이 나왔던 것처럼 북한도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북한은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개방 경험을 참조하고 배워야 하지만 내부 사정이 달라서 자기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영규 연합뉴스 하노이 특파원 youngky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