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배우려는 베트남식 개혁 ‘도이모이’


도이모이 개혁 추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1986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제 6차대회
도이모이 개혁 추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1986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제 6차대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명 ‘도이모이'(Đổi mới)로 불리는 베트남식 개혁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을까. 그리고 왜 북한은 베트남식을 선호하는 것일까.

1975년 베트남전이 끝난후 이념적으로 대립하던 남과 북이 통일을 이뤘다. 승리한 북쪽의 베트남 정부는 사회주의 통합을 추진했으나 경제적으로는 추락을 거듭했다. 남쪽 지역의 사이공(호치민)은 빈곤의 대명사가 됐고 인플레이션은 1200%까지 치솟기도 했다.

전후 10년간 침체된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던 베트남은 1986년 12월 공산당 제 6차대회를 통해 대대적인 개혁을 선언했다. 일명 ‘도이모이’개혁이다. 바꾼다는 ‘도이’와 새롭게한다는 ‘모이’를 합친 이 정책은 베트남 개혁의 대명사가 됐다.

경제개방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도이모이 선언 후 곧바로 농업개혁,가격자유화, 금융개혁 등 민간경제와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정책이 추진됐다. 1991년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도입됐고 이듬해에는 외국인투자법을 개정해 대외문호를 크게 열었다. 같은 해 한국과도 공식 수교를 맺었다.

결국 베트남은 불과 20년전 치열한 전쟁을 치렀던 미국과 손을 잡았다. 수년간의 협의 끝에 1995년 미국과 수교를 한 베트남은 본격적인 경제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북한이 베트남식 모델을 선호하는 이유?

경제분야에 있어서 실질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했지만 베트남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굳건히 유지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식 개혁, 개방 모델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주의 정권유지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베트남의 사례는 김정은 위원장이 원하는 바로 그 그림이다.

특히 베트남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 하고 경제제재를 풀었던것 처럼, 지금의 북한 역시 미국을 지렛대삼아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습이다. 마침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누가 들어도 경제적 지원을 암시한 발언이다.

북한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알렉산드로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는 북한이 이미 베트남식 개혁과 개방에 대한 연구성과를 상당히 축적했다고 밝힌바 있다. 첫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북한이 이미 베트남의 전철을 밟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