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역사탐방] 앙코르 시대 이후의 캄보디아 3

앙코르의 복원에 실패하고 롱백 지역으로 돌아온 뒤 푸난 시대와 같이 상업국가로 돌아온 캄보디아는 프놈펜과 롱백 지역의 생활경제의 대부분이 외국 상인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16세기 중반까지 캄보디아 왕조의 중심은 롱백 지역이었지만 경제적 요충지는 롱백에서 남쪽에 있는 프놈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톤레삽 호수의 줄기와 메콩강의 줄기가 만나는 지역으로 강을 통한 무역의 길목이었다.

메콩강을 통해 북쪽의 라오스로부터 출입하는 상품과 톤레삽 호수에서 나오는 상품을 수출하는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여러 나라의 많은 상인들이 들어오면서 프놈펜 지역은 상업도시의 모습을 갖추었고 16세기 말에는 롱백 지역과 프놈펜 지역에 외국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외국 상인들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17세기에는 롱백에서는 남쪽, 프놈펜에서는 북쪽에 있는 새로운 도읍지인 우동에 외국 상인들을 위한 특별거주지역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당시 캄보디아에서는 금, 은, 보석, 비단, 쌀, 과일, 상아, 코끼리 등 외국으로 수출이 가능한 많은 상품들이 있었다.

앙코르에서 프놈펜 지역(메콩강 유역)으로 캄보디아 왕조의 중심이 이동되어 예전과 같이 상업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지며 왕국의 재건을 노력했지만 이미 약해진 왕조는 새로 이동한 지역에서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기엔 국력이 약했다. 버마 왕조(미얀마)의 약탈로 쇠약해진 아유타야 왕조가 1580년대에 다시 국력을 회복하면서 다시 캄보디아 왕조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캄보디아 왕조를 무너뜨리진 못했지만 1860년대까지 지속된 태국의 간섭의 시작점이 되었다.
17세기 초 캄보디아 왕조는 태국 왕조의 간섭과 영향과 더불어 베트남 왕조 세력의 강화로 왕권의 안정성이 더욱 악화되었다. 1620년대에 들어선 응우옌 왕조(베트남)가 캄보디아 왕조의 불안정을 틈타 캄보디아의 지배하에 있던 메콩강 지역의 남부를 침략하였다. 그리고 1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참파 왕조를 멸망시키고 캄보디아의 통치 하에 있던 쁘라이 노꼬(현재의 사이공)지역까지 지배하였다. 베트남 세력의 확장으로 인한 캄보디아의 영토 침략은 캄보디아의 해양 무역의 통로를 베트남과 중국인에게 점령시켜 라오스를 제외하고는 외부와 단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캄보디아 남동쪽의 캄보디아인들이 베트남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이는 현재까지도 캄보디아인의 베트남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했다. / 글 : 박근태(왕립프놈펜대학 크메르어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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