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변한 베트남 가족여행

 

지난달 19일 새벽 2시쯤(현지시간) 베트남 하롱베이의 외딴 호텔에서 험악하게 생긴 경비원이 사정없이 방문을 두드렸다. 원하는 걸 주지 않으면 물러가지 않겠다, 그런 의지를 보여주려는 듯 초인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는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수상한 경비원, 무책임한 가이드

겁에 질린 여행객 A씨(29·여) 가족은 같은 호텔에 묵고 있던 가이드(48)에게 전화를 걸었다. A씨는 여름휴가차 어머니(53) 남동생(24)과 3박4일 패키지여행을 와 있었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가이드밖에 없었다.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가이드는 자초지종을 듣고도 도와주지 않았다. “달라는 대로 줘서 보내라”고만 했다.

경비원이 요구하는 돈은 2000달러(약 235만원)였다. 이런 돈이 수중에 있을 리 만무했다. 금액을 듣고도 가이드의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울먹이며 통사정했지만 귀찮게 됐다는 투였다고 한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느냐고 묻자 “여긴 사회주의 국가”라며 어떻게 되는지 어디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말했다.

A씨는 그런 가이드를 붙잡고 “너무 무섭고 말이 안 통하니 와서 대화라도 해 달라”며 수차례 사정했다. 마지못해 “알았다”며 끊은 가이드는 잠시 후 방으로 전화해 “못 가겠다. 그냥 돈 줘서 보내라”고 했다. 그때 A씨 가족은 다른 호텔 직원 2명을 동석시켜 경비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가이드는 사태가 간신히 마무리된 새벽 4시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경비원은 앞서 자정쯤 로비에서 A씨 남동생에게 먼저 다가와 ‘해변 파티’를 운운했다. 그가 소개한 현지인은 남동생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5분쯤 가더니 잔돈을 바꿔오겠다며 100달러를 받아 사라졌다. 남동생은 다른 현지인에게 이끌려 한 건물에 감금당했다. 뛰쳐나오자 20명 가까운 건달이 에워싸고 돈을 요구했다. 절반이 웃통을 벗고 있었다. 몸에는 문신과 상처가 가득했다.

이들은 받지도 않은 마사지 값으로 2000달러를 내라고 억지를 부렸다. 권총을 보여주며 위협했다. 주머니를 뒤져 베트남 지폐 50만동(약 2만6500원) 2장을 털어갔다. 그 돈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했다. 이들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바꿔줬다. 한국 남자였다. 목소리가 30대 초반쯤 같았다. 그는 “그 사람들 마피아”라며 “나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가끔 이렇게 전화로 통역을 해주고 돈을 받는다. 당장 돈을 안 주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위협했다.

남동생은 방에 돈이 있다고 둘러댔다. 건달 2명이 그를 데리고 호텔 앞까지 왔다. 경비원은 이들과 아는 눈치였다. 남동생은 건달들을 뿌리치고 호텔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로비 안내데스크 여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말이 안 통했다. 그는 남동생이 경비원에 속아 호텔 밖으로 나갈 때 로비 소파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었다. 남동생은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경비원이 그 안으로 따라 들어와 팔을 휘어잡았다. 그러고는 겨냥하듯 검지를 내밀어 ‘총으로 쏴 죽인다’는 시늉을 했다. 그는 4층 방까지 따라와 돈을 요구했다.

A씨 가족이 완강하게 버티자 경비원은 흥정하듯 금액을 깎기 시작했다. 2000달러는 1000달러, 500달러, 200달러 순으로 떨어졌다. 100달러대까지 부르고는 지쳤는지 포기한 듯 방을 나갔다.

‘공포의 호텔’은 지금도 숙소로

이른 아침 호텔 로비에서 마주친 가이드의 첫마디는 “돈 줘서 돌려보냈느냐”였다. 미안해하기는커녕 남의 일처럼 물었다. 잠시 후 마이크를 잡은 관광버스 안에서는 다른 여행객들에게 “어젯밤에 사건이 있어서 제가 잠을 못 잤다”고 말했다. 한 여행객에게는 A씨 남동생이 성매매를 하고 왔다는 식으로 헛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나중에 사정을 알게 된 40대 여성 여행객은 “나는 가이드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느라 잠을 못 잔 줄 알았다”며 어처구니없어했다. 여행객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18명이었다. 그 중에 기자도 있었다.

19일 오후 하롱베이 섬들을 돌아보는 배 안에서 A씨 가족은 “호텔 경비원이나 여직원이 건달과 한패 같다”고 했다. 가이드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식으로 나왔다. 그는 “내가 호텔에 확인했는데 그런 직원들은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경비원과 여직원은 제복을 입고 호텔 안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이 설명에 “그게 걔네들 수법”이라고 했다. 계속 의문을 던지자 “(경비원) 이름 아느냐” “사진 찍어놨느냐”며 따졌다. CCTV 얘기가 나오자 움찔하더니 “좋다. 어디 한번 확인해보자”고 큰소리쳤다. 다음날 하롱베이를 떠날 때까지 CCTV는 확인하지 않았다.

가이드는 A씨 가족에게 “전에도 이런 일이 많았다. 당신들은 피해가 적으니 그 정도면 잘 끝난 편”이라고 했다. 사실이라면 큰 문제였지만 가이드는 사전에 여행객들에게 어떤 주의도 주지 않았다. 여행객 피해가 잇따르는 호텔을 왜 계속 숙소로 잡는지, 그런 호텔 측 주장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A씨 가족이 봉변을 당한 지 거의 3주가 됐지만 문제의 호텔 ‘골든 하롱’은 같은 여행사의 다음 패키지여행 일정에도 잡혀 있다. 인터파크투어 측은 “대체할 숙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환자에 약은커녕 면박만

A씨는 여행 3일째인 20일 낮부터 장염 증세를 보였다. 아프다는 말을 듣고도 가이드는 “결혼도 안 한 여자가 그렇게 약해서 어떡하느냐. 그래서 애 낳겠느냐”는 말만 했다. 먼저 다가와 괜찮은지 묻고는 아직 아프다고 하면 “그래서 애 낳겠느냐”고 핀잔을 놓는 식이었다. 다음날 공항에 갈 때까지 수차례 반복됐다. 약은 구해주지 않았다.

A씨는 가이드가 데려간 매장에서 나눠준 시음용 노니 차를 마신 뒤로 속이 안 좋았다. 그렇게 말하자 왜 아프냐고 먼저 물은 가이드가 갑자기 화를 냈다. 그는 “가이드 생활 23년 동안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원래 문제가 있었던 거 아니냐”며 몰아세웠다. 노니는 그가 여행객들 앞에서 구매를 적극 권장한 상품이었다.

매년 직장 건강검진에서 이상 없었다고 하자 “몇 월에 받았느냐” “대장 내시경 받았느냐”고 따졌다. 내시경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물고 늘어지며 “대장 내시경 안 받으면 모른다. 내시경도 안 받고 뭐 했느냐”고 나무랐다. 이 자리엔 A씨의 가족과 다른 여행객들도 있었지만 조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가이드는 자기 말만 쏟아놓고 다른 데로 가버렸다. A씨는 “너무 수치스럽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가이드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자칭하며 부모 앞에서도 호통을 쳤다. 몇몇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현지인 직원에겐 더 심했다. 그들을 부를 땐 “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자주 그랬는지 몇몇 여행객은 “야!”를 베트남말로 착각했다.

초등생도 느낀 ‘강매’

아내와 10살 안팎의 자녀 3명을 동반한 금모(45)씨에게 가이드는 “그 돈 내고 왔으면 1인당 20만원은 쓸 생각한 거 아니냐”며 옵션 선택을 부추겼다. 이 여행은 1인당 42만원 정도였다. 가격이 낮은 편이니 추가 비용은 당연하다는 게 가이드 얘기였다. 옵션은 비경투어, 레스토랑 뷔페, 야간 시티투어 등 8개로 1인당 가격은 20~80달러씩이었다. “가이드는 그 정도 옵션을 생각하지 않고 왔다면 도둑놈 심보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금씨는 전했다.

금씨의 아내 김모(41·여)씨는 첫날 밤 가이드 방을 찾아가 옵션 가격을 조절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가이드는 성질을 내며 “하지 말라”고 소리친 뒤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았다고 한다. 김씨는 “꺼내기 쉬운 얘기가 아닌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음날 남편이 다른 문제로 항의할 때 가이드가 또 성질을 부릴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가이드는 옵션을 하지 않겠다는 여행객에게 짜증을 내비쳤다. 야간 시티투어만 하고 싶다는 금씨 가족에게 가이드는 관광버스 이동경로 때문에 레스토랑 옵션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각각 1인당 40달러씩이었다. 실제로는 레스토랑에 가지 않아도 야간 투어를 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김씨는 가이드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막내딸을 업은 김씨가 돌아섰을 때 가이드는 등 뒤에서 화풀이하듯 “야, 차 돌려!”라고 고함쳤다.

귀국하는 4일째를 제외한 3일간 쇼핑 매장 5곳을 들렀다. 4곳이 3일째에 몰려 있었다. 여행 전 공지된 일정표에는 여러 상품을 살 수 있는 매장인 것처럼 ‘쇼핑센터’라고만 돼 있었다. 실제로는 대부분 특정 상품만 파는 곳이었다. 홈페이지의 별도 상세정보 항목에 ‘라텍스, 건강센터(노니), 잡화, 휴게소’라고 작게 적혀 있었지만 이를 본 여행객은 거의 없었다. 편백나무 상품이나 커피 매장처럼 아예 설명하지 않은 곳에도 갔다.

매장은 모두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여행객이 물건을 사면 여행사와 가이드는 매장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여행객들은 매장에 갈 때마다 강의실이나 회의실 같은 밀폐 공간에서 상품 설명만 약 30분~1시간씩 들어야 했다. 다단계 교육장 분위기였다. 실내에 들어가지 않으면 가이드가 빨리 오라고 소리쳤다. 매장들은 외진 곳에 있어서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가이드는 물건을 사라고 압박했다. 월급이 따로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나는 지금 계속 마이너스다. 여러분이 많이 사야 (수수료로) 애기 분유 값을 번다”고 말했다. ‘마이너스’ 타령은 틈만 나면 되풀이됐다. 김씨 아들인 초등학교 5학년생조차 “말로는 강요가 아니라고는 했지만 심리적으로 부담을 줬다”고 했다.

한 50대 여성은 거리에서 1만원을 주고 지갑 6개를 샀다. 저마다 물건을 내밀고 사달라는 현지인들이 안타까웠는지 매몰차게 뿌리치지 못했다. 가이드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더니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왜 사라는 건 안 사고, 사지 말라는 건 사느냐”고 다그쳤다.

여행객들은 팁도 강요받았다. 첫날 마사지숍에 들르기 전 가이드는 팁으로 1인당 4달러씩 주라고 정해줬다. 일부 여행객이 2달러만 주고 나오자 마사지숍 매니저로 보이는 여성이 불편한 표정으로 따라 나왔다. 가이드는 “누가 2달러만 줬느냐”고 추궁했다.

항의하는 여행객에 으름장부터

여행객 대부분이 지난달 21일 귀국 후 여행사에 인터넷 후기나 전화로 항의했다. A씨는 가이드에게 모욕당한 점에 대해서라도 사과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24일 연락해온 인터파크투어 과장급 직원은 겁부터 줬다. 그는 “현지 경찰이 조사 중인데 남동생이 간 데가 성매매 하는 곳이라고 한다. CCTV를 보면 나올 것”이라며 처벌 가능성을 운운했다. 현지 경찰에서 요구한다며 남동생 전화번호와 주소까지 물었다. A씨는 울화가 터졌지만 항의하기를 그만뒀다. 여행사와 현지인들이 말을 맞춰 누명을 쓸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여행사 직원은 “일이 상당히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었다.

경찰이 조사 중이라는 건 거짓말이었다. A씨 남동생이 도망쳐온 장소를 여행사 직원이 가본 것도 아니었다. 여행사 측이 현지 경찰에 신고하러 간 건 취재가 시작된 뒤인 28일이었다. 그마저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한다는 말에 사건 접수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당초 인터파크투어는 하롱베이 호텔 사건에 대해 가이드가 현장인 호텔방에 가서 200달러를 주고 해결한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 가이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방엔 안 가고 로비에만 내려갔다”고 말을 바꿨지만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그는 사건 당시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경비원이 호텔 직원이 아니라는 가이드나 여행사 측 설명도 사실과 달랐다. 그는 해당 호텔에서 오전엔 벨보이, 밤엔 경비원으로 일하는 직원이었다. 인터파크투어는 호텔로부터 받은 공문에서 이를 확인했다. 신원이 드러난 경비원은 자필 진술서에서 여행객에게 누구도 소개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여행사는 경비원이 그렇게 말하니 어쩌겠느냐는 입장이다.

인터파크 “가이드 검증·교육 강화”

문제의 가이드는 ‘용병 가이드’였다. 용병 가이드는 여행사에서 일손이 달릴 때 일당을 주고 쓰는 일용직이다. 해당 가이드는 베트남말도 거의 못하는 수준이었다. 일을 맡기면서 여행사는 검증이나 교육을 전혀 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가이드에게 문제가 있어도 업체 간에 공유가 잘 안 되고, 가이드가 부족한 탓에 문제 있는 걸 알면서 쓰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번 일은 국내 대형 여행사의 사업 방식이 갖고 있는 허점을 내보였다. 특히 인터파크투어 같은 직판 여행사는 해외여행 상당수를 직접 진행하지 않고 현지 여행사에 하청을 준다. 이런 일을 맡아 하는 현지 여행사를 업계에서는 ‘랜드(Land)사’라고 부른다. 여행 일정 설계와 진행, 가이드 선발·운용은 모두 랜드사 소관이다. 인터파크투어는 여행객을 모아 현지로 보낼 뿐이다. 베트남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인터파크 측이 사태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이런 구조 탓이다.

인터파크투어는 문제를 인정하고 해당 가이드에게 일을 맡기지 않기로 했다. 가이드 배정 담당인 현지 실장급 가이드에게는 부실 검증 책임을 물어 2주간 행사 진행을 금지시켰다. 이 가이드는 A씨 가족이 하롱베이에서 용병 가이드에게 도움을 청할 때 같은 호텔에 있었다. 인터파크투어의 다른 패키지 여행을 진행 중이었다. A씨 전화를 받은 용병 가이드가 상황을 알렸을 때 실장급 가이드 역시 “돈을 줘서 보내도록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현지인 직원과 함께 로비에 내려갔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정도에 그쳤다.

랜드사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용병 가이드는 일절 쓰지 않기로 했다. 또 문제가 되는 가이드들에 대해서는 현지 여행사끼리 정보를 공유해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이드를 영입할 땐 현지어 구사 능력과 사건 대처 능력 등을 점검하고 교육하기로 했다고 한다. 인터파크투어는 여행객들에게 발송한 문서에서 “가이드 검증과 교육을 강화해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노이·하롱베이=강창욱 기자, 홍석호 기자 kcw@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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