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복음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있는데 로마서 3장 19-20절 말씀을 보면
1) 사람들의 입을 막고
2)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고
3) 죄를 깨달음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율법앞에 서면 죄를 지었으니까 할말이 없고,죄의 댓가는 사망인데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결국은 내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율법의 중요한 기능이지요.

율법은 내가 지키라고 주신것이 아니요, 내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율법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롬 7:9-10절에 보면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생명에 이르고 복을 받는데 도리어 죄만 드러나고 사망에 이르게 해서 날마다 때마다 나를 죽이는 것이 율법인 것입니다.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수밖에 없고,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조금도 없는 본성이 죄성뿐이다.

이것을 알때 나를 포기하고 십자가의 은혜아래 들어가서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죄용서함 받고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믿음의 첫 발걸음인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에게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달으라’라고 주신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면 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는가?

죄를 깨달을 때 비로소 십자가의 피가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알때 회개하게 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며,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람은 사랑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사랑은 인간의 열매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인데도 강단에서 말씀선포가 설교가 되면 율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똑같은 말씀인데도 노력과 강조와 미래형으로 설교한다면 듣는 사람에게는 율법이 되어서 듣는 사람이 눌리게 됩니다.
말씀을 들으면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열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실수해도 율법을 어긴 것이 되는데 인류 역사상 한 사람도 율법을 100%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먼저 석가와 공자와 와서 종교와 철학과 헛된 속임수와 윤리를 통해서 죄가 드러나고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과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복음으로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살게 하신 것이 바로 기독교의 신앙생활입니다.

갈 3:23절에 보면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때까지는 모든 사람이 율법이란 새장에 종신형으로 갇혀있는 것입니다.

새는 새장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때부터 자유함을 누리기 때문이죠.

신자가 율법이라는 새장에 갇혀 있으면 복음의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율법에서 빨리 해방을 받으려면 진리되신 예수를 믿어야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사람은 믿음의 때까지 율법에 의해 무기수로 갇혀 있습니다.
내가 믿음을 가질 때까지는 종신형을 받은 것입니다.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갈3:10).
율법은 초등교사로서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다하고 은혜의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시죠.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9)

율법은 억지로 내가 잘 해 볼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신앙생활이라면,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고통이라면 복음은 기쁨입니다.
율법은 나뭇잎신앙이라면 복음은 희생이 있는 가죽옷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도 교회도 신앙생활도 율법적일 수도 있고 복음적일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양심과 율법을 통하여 우리를 찔러서 누르게 하지만, 주님은 보혈로 죄를 용서하시고 복음 아래서 믿음으로 살게하시고 지금은 성령으로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와 저주는 같습니다.
죄때문에 인생이 저주와 진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십자가에서 저주는 끝나고, 축복이 시작되었습니다.

구원은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제는 저주의 율법의 자리에서 일어나 축복의 보혈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