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성경이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8-9).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위해,
그리고 왜 사는지도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활 환경이 그들을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만들어 놓습니다.
돈만 있으면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는 그릇된 가치관이,
사람들로 하여금 오직 돈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왜 살아 있는가?”
“나에게 있어서 죽음은 무엇인가?”
“나도 정말 죽을 것인가?”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자신을 향해 던진 질문에 한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우울해집니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 어느 것 하나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오직 답답함을 더욱 느낄 뿐입니다.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언젠가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참 고통스럽습니다.
그동안 내가 어렵게 소유한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나의 존재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에이 집어치우자. 뭐 다 그런 거지. 인생이란 게 뭐 대수라고.
그럭저럭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골치 아프게 이런 걸 다 생각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뭐.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깊이 사색과 연구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대로 잘 살고 있다고 여기고 자기만족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만나고 우리에게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면서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아왔는지 우리가 얼마나 실패자였는지 알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의 시작입니다.

왜 그런가요?
우리가 자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스스로 착각에 빠져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여기지만,
실상은 우리는 절망적인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병에 들었는데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음으로 자신을 건강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 희망의 시작은 자신의 병의 심각성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다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고 주님께 나와 구원을 얻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심각한 질병을 알지 못했습니다.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는 이들만 주님께 나아와서 그분의 긍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대다수의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의인으로 여기는 뿌리 깊은 교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치유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잘 살고 있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심각한 곤경을 알지 못하고 주께 나아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비참함을 느끼고 주님께 나아와서 그분의 도움을 갈망하게 된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더욱 그분을 앎으로 우리의 비참함을 발견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 육체의 신뢰할 것이 많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분과 혈통과 행위를 자랑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 인정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가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신뢰하던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육체였고,
그것에 대한 자랑은 그에게 유익이 아니라 손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자신의 실상을 보았습니다.

그가 주님 앞에서 자신의 과거의 삶을 바로 인식함으로 그는 더 이상 거기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육체의 신뢰할 것들을 위해서 사는 인생을 살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을 붙들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육체의 신뢰할 것들을 위해서 사는 인생은 실패입니다.
그것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여도 실패입니다.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 보면 세상의 성공적인 인생이 실상은 실패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권력을 얻고 사람들의 칭찬을 얻는 것은 다 육체의 자랑들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사는 이들은 실패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이런 육체의 추구들이 어리석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진정한 성공의 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곧 배설물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여기에 진정한 삶의 성공과 행복이 있습니다.
주님이 이전의 실패에서 성공으로 옮기십니다.
이전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닙니다. 주님이 이제 다른 나로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자기 발견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은 곧 나를 새롭게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나를 알지 못했다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새롭게 알게 됩니다.
주님은 빛이시고 그분 안에서 나의 이전의 삶이 비춰지고
그 심각한 문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이제
그분 안에서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그를 부르신 것은 새로운 이름, 새로운 정체성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저주 아래 있던 그가 이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고
열방의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부르심에서 비롯된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우리의 정체성은 육체에 근거한 것이고
그것은 저주 아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육체를 따라 약하고 미련하고 비천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고전 1:27).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 지혜로운 자, 강한 자, 존귀한 자가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과거를 인식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인식했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8-9).”

여기에 새로운 정체성 인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는 이전의 육체의 신뢰를 버리고 나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위하여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잃게 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얻게 됩니다.

이전의 자신이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고 한다면 이것과 비교할 수 없는 성공이 시작됩니다.
그가 주님을 알지 못했다면 그 당대에 한 바리새인으로 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후에
그의 인생은 세계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놀라운 인생계획을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전의 관점으로 육체의 관점으로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육체 아래 사는 삶은 저주 아래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이제 주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가능성을 보아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실패는 우리의 삶의 실체가 아닙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보는 시각은 긍정입니다.
우리는 무한한 사랑, 무한한 능력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은 자입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삶의 경험 속에서 부정적으로 살아왔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입니다.
우리의 육체에 근거해서 우리를 바라보게 되면 두려움과 염려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인생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안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봅니다.
전에는 쉽게 지치고 쉽게 피곤한 인생을 살았고 상황에 얽매이는 인생을 살았다면
이제 상황을 지배하는 주도적인 인생을 삽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육체는 유한합니다.그러나 영의 사람은 두려움 없이 장애물을 뛰어넘습니다.
여러분은 다릅니다.
지금까지도 많은분들이 스스로 신앙 안에 묶여서 가식 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체면. 나잘남. 인정받고 싶은 마음, 하나님 일을 한다며 자기체면을 걸어
모든것을 합리화하며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바리새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나님은 맘에 문을 열도록 끊임없이 노크하고 계십니다.
맘에 문만 열면 네안에 들어가 먹고 마시겠다고“
생각 까지도 감찰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린 아담으로 부터 물려받은 죄인 된 몸입니다

화인 맞은 양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법 잣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양심을 살립니다.
무엇이 죄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