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앙 나와무슨관계가있나?

복음을 전하기만해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옛날과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쁘다고 하거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듣는 것 자체부터 거부해 버리거나
심지어는 심한 욕을 하거나 노골적으로 싫다고 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교회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알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요즘은 예수가 누군지, 성경이 어떤 책인지, 또는 기독교인들이 전도할 때
무슨 말을 하는지, 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이미 현대인들은 전도를 여러번 받았거나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거나
교회를 다녀봤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왜 사람들은 진리를 믿지 않으려 하고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마저 진리를 거부하고 오히려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예수의 죽음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 또는 “요즘 시대에 예수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우기는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네” 또는 “교회가 사실은 상업적 목적을 띄고 있으면서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자신들 복받는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있는 집단”이라고 부정적인 면만 생각하면서 교회를 떠나가는 겁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여러분과 나를 만드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이며 또한 우리가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영적 세계인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이 이땅의 윤리와 도덕적인 삶 만을 강요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이처럼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독교 신앙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사실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 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지금도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은 모두 가치 있는 삶을 살기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되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기독교 신앙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꿈과 이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꿈과 이상이라고 할 때는 일반적으로 돈이나 권력 혹은 지식이나 명예 등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과연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이나 명예만일까요?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의 진실된 삶 속에서의 참된 행복이요 영원한 정신세계의 풍요로운 만족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행복과 만족을 얻으려면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먼저 우리는 우리 인류가 어디서 행복과 만족을 잃어 버렸는지 그 과거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 세 가지 부분으로 지어 주셨습니다.
영과 혼과 육입니다.
육이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육체입니다.
혼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우리의 정신, 혹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의지 등등은 우리 혼의 활동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동물이 육과 혼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인간은 육과 혼과 영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동물에게는 없으면서 우리 인간에게만 있는 영이란 과연 무슨 기능을 하는 걸까요?
영은 영원한 존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은 원래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서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영은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영원히 존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동물은 혼과 육으로만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육의 호흡이 끊어지면 그 존재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육체의 생명이 끊어져도 인간의 혼은 영의 힘을 빌려 영원히 존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영혼은 영원불멸인 것입니다.

영은 직감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색깔을 인식하는 것은 눈을 통해서 합니다.
소리를 인식하는 것은 귀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눈과 귀가 있다고 해도 코가 없으면 냄새는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냄새는 반드시 코가 있어야만 인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맛은 혀로만 인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만들어 주신 것이 바로 영인 것입니다.
사람은 오직 영으로만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심령가운데 있는 빈곳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고독이라고도 하고 허무라고도 부릅니다.
​왜 공허감을 느끼게될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속에 있어야할 영이 죽었기 때문에  느끼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속에 빈곳을 느낄 때 그 빈곳을 채우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생깁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성장 환경이나 성격에 따라 “혹시 돈이 있으면 빈곳이 채워지지 않을까?”
“혹시 지식이 있으면 빈곳이 채워지지 않을까?”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 권력, 지식, 명예 등을 잘못 자기의 이상으로 삼고
일생을 그것에 투자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람들 속에 있는 이 빈곳을 채우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죽어 있는 우리의 영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성령을 받아라, 혹은 거듭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과 만족을 맛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다시 임하심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람이 참다운 행복과 만족을 향유하기 위하여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 이제 영원한 생명이란 무슨 뜻이며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져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귀중한 것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중요한 “나”자신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참다운 삶을 살기 원한다면 반드시 먼저 이렇게 중요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거울로 볼 수 있는 “나”와,
​거울로 볼 수 없는 “나”가 있습니다.
​거울로 볼 수 있는 “나”란 나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요,
거울로 볼 수 없는 “나”란 우리의 영혼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울로 보이는 것이 육체이기 때문에 당연히 육체가 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육체는 결코 참다운 내가 될 수 없습니다.
육체가 “나”자신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육체는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면 함께 늙어가지만, 우리의 육체 속에 담겨있는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도 결코 늙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육체가 “나”라면 육체가 늙으면서 마음도 함께 늙어야하는데 그것이 그렇지 않습니다. ​
육체는 물질입니다. 물질은 원래 느낄 수가 없고 생각할 수가 없고, 또한 스스로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육체 속에 그 무엇이 있어서 끊임없이 느끼며, 생각하며, 또 행동하게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나의 영혼이며, 그것이 진정한 “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육체와 영혼의 관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육체는 집이요, 영혼이 그 집 속에 살고있는 주인이라고 성경은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육체가 장막, 즉 임시 주거지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후 5:1)

​우리가 육체와 영혼의 관계를 정확하게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육체의 죽음의 참 뜻을 알게됩니다.
우리는 육체를 “나”라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육체의 숨이 넘어가면 존재도 사라진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육체의 죽음이란 육체 속에 거하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 이사를 나가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체의 죽음을 “떠난다.(고후 5:8)”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주인이 없는 집이 썩어서 허물어지는 것처럼 영혼이 없는 육체도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
우리의 영혼은 육체를 떠난 다음에도 영원히, 영원히 존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이 영원한 존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나”인 나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영계로 들어갈 때 가는 곳이 어디일까요?
이 세상에서도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처럼 죄를 지은 영혼도 영계에 들어가면 영계의 감옥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그 영계의 감옥을 다른 말로 지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지금은 21세기인데 어떻게 우리의 사후 존재가 있다고 말하고 있을까?
우리들에게 순진무구한 동화를 들려주는 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천당, 지옥이 있다고 말하고 있을까?
대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매우 비논리적이고 자기 자신은 굉장히 논리적”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사후 존재를 믿지 않고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유일한 이유는 여러분이 아직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사후존재를 믿지 아니하고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아니하는 근거로서 그 어떤 다른 근거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사후 존재를 믿지 아니하고, 우리가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여러분이 믿지 못한다 할지라도 사후의 존재가 있으면 그것은 있는 것이요, 천국과 지옥이 있으면  그 또한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분은 ’사랑‘ 이실텐데 우리가 죄를 좀 지었기로 그렇게 무서운 지옥을 만들어 놓고 기다릴 수가 있을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록 우리가 죄를 지었어도 우리를 지옥에 보낼 수가 없으셔서 그 분이 2천 년 전에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받아야할 벌을 대신 받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전체가 말씀하시는 것, 복음이 말하는 것은 바로 2천 년 전에 하나님 자신이 우리가 받아야 할 벌을 다 받아 주셨기 때문에 그 사실을 믿고 너의 영원한 시간을 지옥에서 보내지 말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서 보내자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기독교 신앙생활이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참된 행복과 만족을 향유하기 위하여 기독교 신앙생활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기독교 신앙생활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