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라 용기 내어 글을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희귀병 환자입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게 죄송스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어 글 올립니다. 저는 올해 36세 남자이고 와이프는 20대 후반입니다. 제 나이 26세 때 처음 만났고 10년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직성척추염희귀병을 5년 전에 걸린 후로 점차 병의 진행이 빨라져 이제는 30미터도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습니다. 와이프가 부축해준다 해도 3분 이상 걷기가 힘듭니다. 강직성척추염은 염증이 척추부터 진행되어 흉부, 경추, 눈, 턱뼈, 고관절 등등 모든 뼈로 진행될 수 있고 결국 염증이 진행된 부위가 대나무처럼 뻑뻑하게 굳어가는 완치불가능한 희귀병입니다. 더이상 모든 부위로 진행되어 악화되지 않으려면 진통제와 염증약을 먹으면서 걸어야 하고 간단한 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해요.

걸을 수 있게 8월 31일에 굽어있는 허리를 어느 정도 펴주는 허리교정 수술을 예약한 상태이고요. 후에 인공고관절수술을 받아서 걷는 데 골반통증을 완화시킬 생각입니다. 척추염이라 온몸에 합병증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했는데 저는 치아가 원래 안좋은데다가 염증이 이쪽으로도 진행되어 누룽지 이상을 씹을 수가 없습니다. 양쪽 위아래 성한 어금니가 1-2개 정도만 남아있고 왼쪽에 위아래 틀니씌운 것은 염증 때문에 흔들거려 빼야 한답니다. 지탱해주는 어금니마저 부러진 상태라고 하면서 임플란트 박는 데 왼쪽만 천만 원 이상 말하더라고요. 그냥 포기하고 틀니라도 낄 수 있으면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그래도 30대인데 허리 굽고 치아까지 없으니 밖에 나갈 수도 없지만 대인기피증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지만 병이 제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5년 동안 똑바로 누워서 못자고 옆으로 웅크리고 잤습니다. 2년 전부터는 고관절 때문에 옆으로 눕는 것도 골반에 통증이 와서 반대쪽으로 돌아눕고 또 아파오면 반대로 돌고 이러다 보니 1-2시간이상 갚은 잠이 들 수 없습니다. 불면증까지 온 상태라 한상 졸린 눈이고요. 저는 차상위계층이고 하나뿐인 어머니는 한 분 계시는 형님이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또한 돈이 없는데 살아 생전 제 허리 펴지는 것은 보고 싶으시다고 허리수술을 예약한 상태입니다. 물론 어떻게든 빌려서 수술비를 낸다고는 하시는데 지금도 저때문에 빚이 있으신데 막막하기만 합니다. 너무 불효만 하는 것 같습니다.
군복무 중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고 6개월만에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살다 대학교 2학년때 지금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부모님 반대로 2년간 힘들게 교제하다 결국 둘이 같이 집을 나와 돈 한 푼 없이 그렇게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안해본 일이 없습니다. 애견훈련소 잡일부터 식당 잡일. 쓰레기 분리수거장 분리수거. 2002월드컵 장사, 돈가스 장사 등등..2007년도 쯤에 갑자기 목이 안움직여서 병원에 갔더니 강직성척추염이라 했습니다. 치료를 계속 받았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결국 2009년도에 희귀병 확진판정을 받았습니다.
지금 몸도 마음도 너무나 힘든 상태입니다.
2010년에 윗층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와이프가 한마디 했는데 남녀 8명 정도가 우루루 나와 제 와이프 머리 잡고 흔들고 코뼈가 흔들거릴 정도로 때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이성을 잃고 나갔지만 내 허리를 보고 우습게 보였는지 멱살을 잡고 벽에 밀더군요. 허리가 너무 아파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합의금으로 치료비 받을래??그냥벌금낼까??” 가해자가 한 말입니다. 내가 어쩌다가.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에게 인기도 있었고 대학교 다닐 땐 과대표도 할만큼 당당히 살았는데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멸시받고 비참해졌을까 생각하니 눈물만 났습니다. 이때는 처음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삶도 희망도. 결국 한달 후에 아픔과 상처가 있는 그곳에서 이사를 갔습니다.

이 사건 이후 저는 와이프를 보내주기로 생각했습니다. 남편으로서 한 여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과 생활비도 못 벌어준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으므로 서로를 위해 와이프는 장인어른집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왔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희는 부모반대로 정식결혼한 상태도 아니었고 아이가 없었습니다. 2011년도인 지금은 병의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 2년 전부터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대인기피증도 생겼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올해 6월에 저랑 같은 병을 가지신 문익주 환우분이 나오는 TV를 보며 허리가 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받아야 한다는 말을 가슴 깊이 새깁니다.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제가 많이 아파보니 알 것 같습니다.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수술이 잘 되어 걸을 수 있고 오뎅이라도 마음껏 씹어 먹을 수 있게 되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상상합니다. 걷는 것, 일하는 것, 데이트하는 것, 산책하는 것조차 행복이라는 걸 생각하면 울고 싶어집니다.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제가 잘 걸을 수 있는 날..그렇게 그리던 그녀와의 데이트를 몇 년만에 하게 되기를…손잡고 결혼식을 할 수 있는 날을…정말 사랑해서 떠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이해하게끔 만든 우리 사랑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보려 합니다. 하나뿐인 어머니를 마음 놓고 안아드릴 수 있기를.. 어머니 눈물이 마르는 그날이 오기를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요.
#의료비지원#건강한삶#어려운이웃#난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