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고집쟁이들

아름다운 고집쟁이들

고집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티는 성미를 말한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고집이 세다거나 고집을 부린다거나 하는 말은 보통 긍정적인 의미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고집에 얽힌 속담들도 대부분 그런 식이다.
‘쇠고집이다.’라는 속담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마는 소처럼 고집이 몹시 센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항우는 고집으로 망하고 조조는 꾀로 망한다.’는 말은 고집 세우는 사람과 꾀부리는 사람을 경계하는 뜻으로 쓰인다.
그 외에도 옹고집이며 똥고집까지, 융통성 없이 지나치게 버티는 것을 비웃고 놀리는 단어들이 우리말 속에 다양하게 남아 있다.

사람들끼리 어우렁더우렁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세상에서 고집이 세다는 건 분명 흉일 수 있다.
조금만 양보하면 좋을 일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 때는 고집이라기보다 집착이나 독선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모두가 쉽게 타협하고 포기하고 안주하기만 했다면, 인간 세상은 이만큼이나 풍요롭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세종 대왕이 사대주의에 젖은 대신들의 벌떼 같은 반발에 한글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고집을 꺾었다면, 이순신 장군이 왕과 조정의 의심과 견제에 굴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싸움터에 서겠다는 고집을 포기했다면, 과연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소신과 의지를 꺾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피웠던 아름다운 고집쟁이들을 역사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한동안 북미의 작은 도시에서 살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신문의 제1면에 ‘사슴 한 마리,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다’가 머리기사로 실린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의 내 심정은 황당하고 착잡했다.
한국 사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너무 많은 뉴스거리를 생각하면 사슴 한 마리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그 고요한 사회가 신기하고도 부러웠다.
그처럼 ‘투 다이나믹 코리아(Too dynamic Korea)’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변화무쌍한 한국 사회에서는 뭔가 변치 않는 것을 찾는 일 자체가 어렵고 힘들다.
그래서 ‘한국의 고집쟁이들’란 책에 소개된 스물세 명의 고집쟁이들을 만나는 일은 감사하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들은 대단히 거룩한 위인이 아니다.
엿장수, 대장장이, 이발사, 백자와 연, 운석, 화석과 돌집에 미친 사람들…….
때로 세상은 그들을 어리석고 뒤처진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들 역시 자기 입으로 절대로 내 자식들에게는 이 일을 하라고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돈도 되지 않고 큰 명예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뒤안길에서 변치 않는 가치를 지키며 앙버티고 산다.
조상 대대로 해 왔던 일이기에, 여태껏 이 일로 밥술 뜨고 살아온 일이 고마워서, 더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기에 이대로 맥을 끊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때로는 그냥 그 일이 좋아서 한다.

그들은 거창한 말을 앞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모든 일이 오랫동안 깊고 지극해지면 마침내 어떤 경지에 다다른다고 믿는다.
그래서 고집쟁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느 이론보다 철학적이고 심오하게만 들린다.
“우리가 사는 데 F가 두 개 필요해. Forget(잊어버리라), 그리고 Forgive(용서하라).”
“’봉사’라는 말은 틀렸다, ‘보답’이나 ‘나눔’이라는 단어로 바꿔야 한다. 자연이 뭘 바라고 주는 거 봤나?”
“생명을 걸지 말라고? 목숨 안 걸고 이걸 어떻게 한대요?”

이따금 어떤 일을 하고프지만, 과연 자신이 그 일에 재능을 가졌는지를 고민하는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일단 십 년은 그 일에 매진하며 버텨 보라고 충고한다.
십 년은 한 사람의 일생에서 매우 긴 시간이기도 하지만, 간절히 원했던 어떤 일을 이루는 데는 여전히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십 년 동안 고집을 피우다 보면 내가 과연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는지 없는지가 저절로 보인다.
누군가의 말대로 재능이란 열정과 끈기의 다른 이름이니까.
그리고 그 열정과 끈기란 꽃피기 직전까지는 둔하고 어리석은 고집처럼만 보이기도 하니까.

글 : 김별아

[출처] 아름다운 고집쟁이들|작성자 웃어서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