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25년 한국 속 베트남] ③ 한국인 이웃에 바란다

“내외국인 어울리는 자리 많아져야” “‘빨리빨리’란 재촉 싫다”
“베트남 역사·문화에도 관심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아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국내 체류 베트남인들은 한국을 어떻게 느끼고, 한국인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유학생, 다문화가정 자녀 등에게서 한국에서 생활하며 겪은 경험담과 한국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 원옥금(42·결혼이주여성·재한베트남공동체 회장) 씨 = 베트남에서 영어 통역 일을 할 때 그곳의 방직공장 건설 현장에 엔지니어로 파견된 남편과 만나 1996년 결혼한 뒤 이듬해 한국에 왔다. 마침 남편이 베트남 왕족의 후손인 화산 이씨여서 양가 모두 흔쾌히 결혼을 허락했다. 입국 후 6개월 만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남편은 회사에 다니고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을 두고 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베트남 사람은 물론 외국인 자체가 드물어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나를 외계인 보듯 하는 시선이 느껴져 밖에선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이제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우리끼리 베트남어로 대화해도 거리낌이 없어졌다. 외국인을 보는 인식이 해가 갈수록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외국인이 많이 늘어나다 보니 경계하는 분위기도 생겨났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무조건 반감을 드러내는 ‘반(反)다문화’ 목소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혹시라도 엄마가 외국 출신이라는 걸 우리 애 친구들이 알면 놀릴까 봐 나는 애들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우리 애들은 외모만 보면 다문화가정 자녀라는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는 딱 한 번 가봤다. 베트남통번역상담센터 대표로 일하며 방송통신대 법학과를 졸업해 법원에서 통역 봉사도 한다. 내가 없으면 베트남 노동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가 없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공공기관이나 민간단체의 행사 때 구색 맞추기로 우리를 초청해 자리만 채우려는 사례가 많다. 우리도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은 우리만 따로 불러 교육이나 문화 체험 기회를 준다. 내외국인이 어울려 지내는 자리가 많아야 외국인이 빨리 적응할 수 있고 내국인도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

한국은 지식인이나 전문직에는 문호가 넓고 단순노무자에겐 까다롭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비중도 크다. 이들이 단순 업무만 하다가 돌아가지 않고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양국 간 교류도 균형을 이뤘으면 좋겠다. 베트남의 과일이나 채소 등이 많이 수입돼 싸게 사 먹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 리비엣(39·이주노동자) 씨 = 2008년 한국에 들어왔다. 고용허가제에 의한 체류 기간은 최대 4년 10개월인데, 한 차례 한도를 채우고 귀국했다가 다시 입국했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경충대로의 식품기계 제조공장 그랜드벨에서 용접 일을 하고 있으며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처음에는 한국말도 할 줄 모르고 일도 서툴러 힘들었다. 한국인 관리자가 재촉하며 하는 말 “빨리빨리”가 그렇게 듣기 싫을 수가 없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해 인근에 한국이주노동재단이 운영하는 외국인 쉼터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어를 배우고 나니 한국인과의 관계는 물론 다른 이주노동자와의 사이도 좋아졌다. 이제는 불만이 없다. 회사 사장님과 사모님도 좋고, 한국이주노동재단의 목사님도 내게 잘해준다. 일요일마다 쉼터에 나와 한국어도 공부하고 다른 노동자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고향에는 설 때마다 다녀온다. 우리 가족은 부모와 누나, 남동생, 여동생 모두 여섯 식구인데 나 혼자만 결혼하지 않은 채 한국에 따로 산다. 고향 갈 때는 홍삼이나 영지버섯 등을 선물로 가져간다.

한국에서 여기저기 많은 곳을 구경했다. 제주도만 못 가봤다. 가본 곳 중에서는 서울의 경복궁이 가장 볼 만했다. 고향에 갈 때마다 한국 자랑을 하는데, 그곳에서도 한국 제품이나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나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것 같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가까이하기 어려웠으나 이제는 한국 사람이 좋아졌다. 내가 본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하고 친절하고 정도 많다. 한국에 불만이 있다면 우리한테 비자를 까다롭게 내준다는 것이다. 비자 문제만 해결되면 베트남 여성을 데리고 와 한국에서 결혼해 함께 살고 싶다.

◇ 팜하이찌엔(41·재한베트남유학생연합회장·중앙대 건축과 재학) 씨 = 2014년 2월 입국했다. 베트남의 많은 젊은이가 한국 유학을 꿈꾼다. 한국은 여러 분야에서 앞서 있고 교육 환경도 좋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베트남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이 많아 취업에 유리한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한국인과 한국 정부는 “Imagine Your Korea”(상상하세요, 당신만의 대한민국)이란 슬로건 아래 베트남을 비롯한 세계에 한국을 잘 알려왔다고 생각한다. 유학생뿐만 아니라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 등이 한국을 많이 찾는 것은 한국의 매력에 이끌린 데다 한국에 가면 기회가 많을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베트남인들은 양국을 하나로 엮는 연결고리다. 두 나라 남녀가 가정을 이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내 뒤를 이어 한국에서 공부하겠다고 선택한 후배들도 든든하게 느껴진다.

한국인들도 베트남을 더 많이 찾고 베트남에 더 투자해주기 바란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베트남을 적극적으로 소개해주면 좋겠다.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이루려면 상호 이해가 필수적이다. 베트남 역사와 문화에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한다.

베트남은 한국과 여러 면에서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 베트남 학생들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한국 학생들과 쉽게 유대감을 느낀다. 이들은 고국에 돌아가 각계에서 친한파 인사로 활동하며 한국과의 우호 협력에 기여할 것이다. 베트남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더 많이 주기 위해 장학금 혜택이 늘어나기를 희망한다.

◇ 송미선(11·다문화가정 자녀·인천 부평동초등학교 5학년) 양 = 아빠는 택시 운전을 하시고 중학교 1학년인 오빠가 있다. 아주 어릴 때는 내가 친구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똑같이 한국말을 쓰고 얼굴 생김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들은 우리 엄마가 자기네 엄마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몇몇 친구가 “너는 나랑 다르니까 같이 안 놀 거야”라며 나를 따돌린 적이 있다. 속이 상했지만 집에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슬퍼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외가에는 여러 차례 다녀왔다. 올봄에도 가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뵙고 친척들도 만났다. 다들 나를 무척 예뻐해 주셔서 자주 가고 싶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로 구성된 레인보우합창단이 단원 오디션을 치른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보고 엄마에게 졸라 지난해 12월 합창단에 들어갔다. 혼자 전철로 매주 두 차례 서울 충정로역 근처의 한국다문화센터를 오가는 게 힘들지만 노래 부르고 친구들과 얘기하는 게 좋아 집에 오자마자 다음 연습 날이 기다려진다.

여기에 오면 나보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훨씬 다른 친구도 많아 내가 특이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만나서 얘기해보면 생각은 다 똑같다.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9월에는 교황님이 계시는 바티칸의 베드로대성당에서 노래를 불렀다. 지난달 24일에는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감사음악회 무대를 꾸몄다. 여러 명이 화음을 맞춰 노래하면 훨씬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집에서는 엄마가 고향 음식을 가끔 해주신다. 월남쌈은 우리 집의 대표 메뉴다. 엄마가 베트남어를 가르쳐주셔서 조금 할 줄 안다.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 동시통역사가 될 생각이다. 외교나 무역 등의 분야에서 한국과 베트남을 더 가깝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