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방청권에 40만원 수고비..”대신 줄서드립니다

아파트 청약 땐 이틀 줄 서고 60만원 받기도..유치원 접수 등 줄서기 대행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입구 앞에 ‘평창 롱패딩’을 사려는 시민들이 밤을 지새우며 기다리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8월29일 울산의 한 주민센터 앞에 긴 줄이 만들어졌다. 9월에 열릴 한 음악회 방청권을 주민센터에서 1인당 2매 선착순 무료제공하기로 했기 때문. 아이돌그룹 ‘워너원’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틀 전 부터 줄서기가 시작됐다. 첫 번째 방청권을 손에 넣은 사람은 소녀팬이 아닌 20대 A씨. A씨는 한 소녀팬의 의뢰를 받고 이틀 전부터 대신 줄을 선 ‘줄서기 아르바이트생’이다. A씨는 ‘공짜’ 방청권을 얻어 주곤 수수료로 40여만원을 받았다.

◇대신 줄서기 시급 1만원에서 2만5000원까지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맛집 줄서기부터 아이폰과 같은 신제품 구매, 사립 유치원 입학 접수까지 ‘대신 줄 서기 서비스’가 성행하고 있다. 대부분 개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등을 통해 알음알음 의뢰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아예 ‘줄서기 아르바이트’ 전문 업체까지 등장했다. 대신 줄을 서고 받는 돈은 한 시간당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2만5000원가량이다.

휴학생인 B씨는 전문 줄서기 아르바이트생이다. 지난달에는 서초의 한 아파트앞에서 사흘전부터 줄을 섰다. 이 날은 미계약분에 대한 동·호수 지정이 선착순으로 이뤄지는 날이었다. B씨의 의뢰인은 원하던 15층을 계약하고 B씨에게 60만원을 건넸다.

B씨에게 대신 줄서기를 의뢰한 C씨는 “고층이 저층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게 때문에 60만원쯤은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B씨는 “대신 줄 서기 아르바이트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아르바이트”라며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세 선호한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 주에 사는 15세 소년 데즈먼드 롤던은 대신 줄을 서주는 서비스로 2년만에 약 2만달러(약 2170만원)을 벌어 화제가 됐다. 롤던은 최소 6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동네의 유명 바비큐 맛집에서 줄을 서며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 차를 살 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롤던은 이제 대학교 학비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돈많고 시간없는 직장인…유치원·병원 접수 등 의뢰


아이폰X 정식 출시일인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스퀘어 앞에서 구매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개인 아르바이트에서 시작된 줄서기 대행 서비스는 정식 사업으로도 성장하고 있다. 미국 뉴욕엔 S.O.L.D(Same Ole Line Dudes)
라는 줄서기 대행업체가 등장하며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이 회사 로버트 사무엘 대표는 “애플 아이폰 신형이 등장할 때 마다 줄을 서는 사람들을 보고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했다”며 “첫 서비스에서 19시간을 기다려 325달러를 받았다”고 말했다. S.O.L.D 주요 고객은 시간이 없지만 금전적 여유가 충분한 전문직 종사자들이나 CEO 등이다.

우리나라에도 줄서기 전문업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업자 등록까지 마친 경남의 한 줄서기 전문업체 대표 김모씨는 “줄서기 대행 서비스는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며 “서울 지역은 줄서기 사업이 포화상태라 지방을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최근 화제가 됐던 평창 롱패딩 구매를 위해서도 대신 줄을 섰다. 그는 “평창 롱패딩의 경우 10시간 넘게 기다렸다”며 “패딩 가격 14만9000원을 포함해 총 29만원을 서비스 비용으로 책정했다”고 말했다.

경쟁률이 높은 일부 고급 사립 유치원은 선착순으로 원아 모집을 받는다. 김 대표는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은 열혈 부모들이 좋은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기위해 대신 줄서는 것을 의뢰한다”며 “원아 모집의 경우 평균 이틀정도 줄을 선다”고 말했다.

대표의 줄서기 업체에는 한달 약 20건의 의뢰가 들어온다. 지역의 유명 신경외과 병원 접수부터 단순 맛집 줄서기까지 줄서기 공고를 직접 올리지만 역으로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줄서기 대행 서비스를 개인에게 맡겼을 경우 줄서기에 실패하고 연락을 받지 않아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한정판 농구화를 사기 위해 줄서기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봤다는 금융업 종사자 D씨는 “출근 전 직접 줄을 섰다가 대행 아르바이트생이 오면 얼굴을 확인한 후 줄서기를 맡기고 퇴근 후 다시 아르바이트생과 자리를 바꿨다”며 “줄서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얼굴을 확인하고 수고비는 후불로 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신현우 기자 hwshin@mt.co.kr